너와 같이 살앗던 세월을 기억한다
- 글번호
- 296818
- 작성자
- 노원철
- 작성일
- 2008.07.01 16:14
- 조회수
- 2395
- 공개여부 :
- 공개
영철아
믿기지 않은 사실이 일어나고 말앗구나
형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않는다
네가 떠나간지 일주일이 되어가나보다
지난 토요일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가는구나
오늘 토요일이야
너와 같이 살아온 54년
돌이켜보면 아득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가 어릴때 아마 너댓살은 되었을거야
꼭 밤에만 화장실을 간다고 해서
구박도 많이 맞앗지
그래서 혼자 말로
햇볕나라 똥누러 가게..이렇게 중얼거리곤 햇지
그땐 마당 뒷구석에 있었던 화장실이
지금 생각해도 어린 마음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수었엇던 곳이야
내가 너를 지켜준다고 그래도 형이라고 변소 앞에서 지켜서있엇지
위안도 되엇으리라 생각된다
한두번이 아니고 밤마다 계속되엇엇지
그래도 난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햇엇어
그후에 한강이 보이는 산동네로 이사를 갓엇지
기억되는건 여름철이 무척이나 길고 땡볕에 더웟던 기억
엄마가 시장에서 천을 사다 똑같이 만들어준 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잠자리 메뚜기 잡으며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렇게 동네 아이들과 칼싸움도 하고 연탄재 싸움도 하고
말까기 다방구.. 돈없이 도 하루종일 놀수있었던 놀이를 하며
어린 시절을 함깨 보낸 기억이 난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이 들고 우린 어미니의 보살핌 없이 한동안 힘들게
어렵게 지냇엇지 .. 그러다가 네가 병에 들고
약을 먹고.. 순박한 너의 얼굴 모습이 오늘 이렇게 떠오르는구나
먹을것이 별로 없어 수제비로 몇날을 계속 먹던 시절
그래서 우린 수제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차나
참으로 고생을 같이 햇엇지
그래도 고생으로 기억되지않는것은
한이불 한지붕 밑에서 의지하며 살앗기 때문일거야
어머님이 우리를 위해 억척같이 사셧지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할수 있었던거야
그땐 참 가난도 햇엇다
그 멀고 먼 학교길을 다니면서 힘도 않들엇엇어
은로 초등학교 대 크레용을 잃어버려서 울면서 " 내크레용 내 크레용" 하며 뱅뱅 돌던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는 안스럽기도 하고 웃습기도 햇지만 아버지가 너를 안아주엇다는 이야기도 들엇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느끼지 못하며 아버지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햇던 시절도 잇었다
중고등학교땐 같이 한학교를 다녓지
고등학교땐 공부도 열심히 햇엇다
남들이 들어가기 힘든 대학을 과외나 학원한번 제대로 가보지 않앗어도
어려움 없이 들어갓으니 그때가 우리 전성기엿던것같애
어머니가 지금도 하시는 말씀이 그때가 가장 행복햇엇다고 하시니
내가 생각해도 넉넉치는 않앗어도 그런것 같애
어머니의 생각은 굶기지 않고 공부를 시키겟다는 일념뿐이엇지
그리고 군대를 가고 몇년을 떨어져 잇엇지만 면회가서 엄마랑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은것이 잇어 그땐 참 멋진 3형제의 모습이엇어
그전에 내가 결혼을 하고 새식구가 들어오고
좁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앗는지
넌 형수를 잘따랐었지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같이 한솣밥을 먹으며 좁은 아파트에서 사이좋게 도 살앗엇다
너도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하고 그 멀던 강원도에 가 있엇지만 한번도 난 가보지 못햇구나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렵던 살림도 나아져가고
3형제가 같이 휴가를 떠나는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즐거웠고 행복햇엇다
어느 추운 겨울 밤새도록 차를 몰고 새벽에 도착한 속초 월컴 콘도 난 그때 콘도를
처음 가보앗지 바다가 훤히 보이고 즐거움에 피곤한지도 몰랏엇다
잠도 안자고 새벽에 동명항 어느 회가판대에서 회를 사서 재미잇게 소주도 한잔하면서
설악산에도 가고 바다가에서 모래찜질도 하고 조개도 잡고 밤이면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인디언 외침도 하면서..입 입 입 야~~호.. 귀따갑도록 핀잔을 들어가면서도 외치던 그때가 그립구나
그 기록이 영상으로 남아 있지
넌 영어 실력이 좋아 사업도 잘이루고 네가 들여주는 외국의 이야기는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러웟단다
유머가 풍부하고 부드러우며 마음이 여린 내동생 너의 그 모습이 그리워지는구나
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즐거움만 잇지는 않겟지만
그 어려움을 이기고 이제 행복한 미래를 보려햇는데
아이들이 시집을 가고 초카들이 장가가서 손주들을 낳고 이런 모습을 같이 보면서
오래 오래 살려고햇는데..
너와 같이 간 설악산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렷구나
형으로서 해줄수 잇는것도 없이
그 아품을 덜어주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바라볼수 밖에 없엇던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엇다
혼자 생활하던 좁은 공간에서의 외로움이
더욱 너를 옳메엇을 생각을 하면
좀더 자주 찾아살걸 하는 후회감이 찾아드는구나
어느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
네가 심상치않음을 문뜩 생각햇엇는데
그때만이라도 병원을 가서 정밀 검사만 햇더라도
이렇게 널 일찍 보내지 않아도 되지않앗을까
너무 안타깝구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디 앉아 막걸리라도 한잔 할 량이라면
널 생각하며 평평 눈물이 나올것만 같다
너의 흔적 너의 체취 너의 미소 너의 목소리
어느 하나라도 잊지 않고 싶구나
형도 알아보고 어머니도 알아보는 네가
그렇게 가버리라고는 생각도 못햇엇다
정신을 놓고 잇어도 다시 깨어날줄만 알앗지
의사말이 거짓으로만 들렷엇는데
아무말도 않고 의식이 없을때
모든 식구들은 도저히 받아들일수 가 없엇다
지금도 문뜩 문뜩 떠오르는 너의 모습이
아직도 집에 가면 네가 잇을것만 같은데
그래도 병마에서 해방되었다는 마음에 위안을 삼을련다
넌 이세상을 착하게 고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 왔기에
천국에 무시험으로 올라갓을꺼야
사람은 한번은 가야할 길이지만 네가 먼저 떠나게 되어 그게 섭섭할뿐이다
하늘나라에 가서 좋은 자리 잡고 있으면 나중에 형이 갈때 반갑게 맞이해주기 바란다
고참 집사가 되어 그 밝은 웃음을 지으며 " 형 ~~어서와~~ 하며 재미난 이야기 나누어 보자
다시 만날때까지
잘잇어라
너와 같이 살앗던 54년 세월이 참으로 행복햇고 즐거웠었다
2008년 6월 28일 너를 보내고 1주일되는 토요일 아침에
형이 쓴다
믿기지 않은 사실이 일어나고 말앗구나
형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않는다
네가 떠나간지 일주일이 되어가나보다
지난 토요일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가는구나
오늘 토요일이야
너와 같이 살아온 54년
돌이켜보면 아득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가 어릴때 아마 너댓살은 되었을거야
꼭 밤에만 화장실을 간다고 해서
구박도 많이 맞앗지
그래서 혼자 말로
햇볕나라 똥누러 가게..이렇게 중얼거리곤 햇지
그땐 마당 뒷구석에 있었던 화장실이
지금 생각해도 어린 마음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수었엇던 곳이야
내가 너를 지켜준다고 그래도 형이라고 변소 앞에서 지켜서있엇지
위안도 되엇으리라 생각된다
한두번이 아니고 밤마다 계속되엇엇지
그래도 난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햇엇어
그후에 한강이 보이는 산동네로 이사를 갓엇지
기억되는건 여름철이 무척이나 길고 땡볕에 더웟던 기억
엄마가 시장에서 천을 사다 똑같이 만들어준 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잠자리 메뚜기 잡으며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렇게 동네 아이들과 칼싸움도 하고 연탄재 싸움도 하고
말까기 다방구.. 돈없이 도 하루종일 놀수있었던 놀이를 하며
어린 시절을 함깨 보낸 기억이 난다
그러다 아버지가 병이 들고 우린 어미니의 보살핌 없이 한동안 힘들게
어렵게 지냇엇지 .. 그러다가 네가 병에 들고
약을 먹고.. 순박한 너의 얼굴 모습이 오늘 이렇게 떠오르는구나
먹을것이 별로 없어 수제비로 몇날을 계속 먹던 시절
그래서 우린 수제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차나
참으로 고생을 같이 햇엇지
그래도 고생으로 기억되지않는것은
한이불 한지붕 밑에서 의지하며 살앗기 때문일거야
어머님이 우리를 위해 억척같이 사셧지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할수 있었던거야
그땐 참 가난도 햇엇다
그 멀고 먼 학교길을 다니면서 힘도 않들엇엇어
은로 초등학교 대 크레용을 잃어버려서 울면서 " 내크레용 내 크레용" 하며 뱅뱅 돌던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는 안스럽기도 하고 웃습기도 햇지만 아버지가 너를 안아주엇다는 이야기도 들엇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느끼지 못하며 아버지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햇던 시절도 잇었다
중고등학교땐 같이 한학교를 다녓지
고등학교땐 공부도 열심히 햇엇다
남들이 들어가기 힘든 대학을 과외나 학원한번 제대로 가보지 않앗어도
어려움 없이 들어갓으니 그때가 우리 전성기엿던것같애
어머니가 지금도 하시는 말씀이 그때가 가장 행복햇엇다고 하시니
내가 생각해도 넉넉치는 않앗어도 그런것 같애
어머니의 생각은 굶기지 않고 공부를 시키겟다는 일념뿐이엇지
그리고 군대를 가고 몇년을 떨어져 잇엇지만 면회가서 엄마랑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은것이 잇어 그땐 참 멋진 3형제의 모습이엇어
그전에 내가 결혼을 하고 새식구가 들어오고
좁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앗는지
넌 형수를 잘따랐었지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같이 한솣밥을 먹으며 좁은 아파트에서 사이좋게 도 살앗엇다
너도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하고 그 멀던 강원도에 가 있엇지만 한번도 난 가보지 못햇구나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렵던 살림도 나아져가고
3형제가 같이 휴가를 떠나는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즐거웠고 행복햇엇다
어느 추운 겨울 밤새도록 차를 몰고 새벽에 도착한 속초 월컴 콘도 난 그때 콘도를
처음 가보앗지 바다가 훤히 보이고 즐거움에 피곤한지도 몰랏엇다
잠도 안자고 새벽에 동명항 어느 회가판대에서 회를 사서 재미잇게 소주도 한잔하면서
설악산에도 가고 바다가에서 모래찜질도 하고 조개도 잡고 밤이면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인디언 외침도 하면서..입 입 입 야~~호.. 귀따갑도록 핀잔을 들어가면서도 외치던 그때가 그립구나
그 기록이 영상으로 남아 있지
넌 영어 실력이 좋아 사업도 잘이루고 네가 들여주는 외국의 이야기는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러웟단다
유머가 풍부하고 부드러우며 마음이 여린 내동생 너의 그 모습이 그리워지는구나
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즐거움만 잇지는 않겟지만
그 어려움을 이기고 이제 행복한 미래를 보려햇는데
아이들이 시집을 가고 초카들이 장가가서 손주들을 낳고 이런 모습을 같이 보면서
오래 오래 살려고햇는데..
너와 같이 간 설악산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렷구나
형으로서 해줄수 잇는것도 없이
그 아품을 덜어주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바라볼수 밖에 없엇던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엇다
혼자 생활하던 좁은 공간에서의 외로움이
더욱 너를 옳메엇을 생각을 하면
좀더 자주 찾아살걸 하는 후회감이 찾아드는구나
어느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
네가 심상치않음을 문뜩 생각햇엇는데
그때만이라도 병원을 가서 정밀 검사만 햇더라도
이렇게 널 일찍 보내지 않아도 되지않앗을까
너무 안타깝구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디 앉아 막걸리라도 한잔 할 량이라면
널 생각하며 평평 눈물이 나올것만 같다
너의 흔적 너의 체취 너의 미소 너의 목소리
어느 하나라도 잊지 않고 싶구나
형도 알아보고 어머니도 알아보는 네가
그렇게 가버리라고는 생각도 못햇엇다
정신을 놓고 잇어도 다시 깨어날줄만 알앗지
의사말이 거짓으로만 들렷엇는데
아무말도 않고 의식이 없을때
모든 식구들은 도저히 받아들일수 가 없엇다
지금도 문뜩 문뜩 떠오르는 너의 모습이
아직도 집에 가면 네가 잇을것만 같은데
그래도 병마에서 해방되었다는 마음에 위안을 삼을련다
넌 이세상을 착하게 고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 왔기에
천국에 무시험으로 올라갓을꺼야
사람은 한번은 가야할 길이지만 네가 먼저 떠나게 되어 그게 섭섭할뿐이다
하늘나라에 가서 좋은 자리 잡고 있으면 나중에 형이 갈때 반갑게 맞이해주기 바란다
고참 집사가 되어 그 밝은 웃음을 지으며 " 형 ~~어서와~~ 하며 재미난 이야기 나누어 보자
다시 만날때까지
잘잇어라
너와 같이 살앗던 54년 세월이 참으로 행복햇고 즐거웠었다
2008년 6월 28일 너를 보내고 1주일되는 토요일 아침에
형이 쓴다